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해저 탄광에서 발생한 참사는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회피적 태도와 일본 시민단체의 양심적 노력이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조세이 탄광 사건은 과거사 청산과 진정한 화해의 길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바닷속에 묻힌 역사: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의 비극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위치한 조세이(長生)탄광에서 대규모 수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갱도로 바닷물이 흘러들어 183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었고, 그중 136명(약 74%)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이었습니다^1. 전쟁 물자인 석탄 증산을 위해 일본은 안전 기준도 무시한 채 해저 갱도를 개발했고, 위험하다는 소문에 일본인들이 일하기를 꺼리자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습니다^1.
이 사고는 우연이 아닌 예견된 참사였습니다. 사고 발생 3개월 전부터 갱도에서 누수 현상이 있었으며, 이후에도 물이 세거나 스며드는 일이 반복되었음에도 탄광 측은 작업자 보호를 위한 조치 없이 작업을 강행했습니다^3. 일하던 조선인들은 "바다 위를 다니는 어선들의 통통거리는 소리도 들려올 정도로 매우 위험한 장소"에서 노역에 시달려야 했습니다^9.
사고 현장은 인권유린의 장소였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탄광은 "포로수용소를 연상케 할 정도로 노동력 착취와 폭력·감금이 이뤄졌다"고 합니다^7. 한 희생자가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울타리는 3m 정도의 두꺼운 소나무 판자로 둘러싸여 있고, 그 바깥쪽은 철조망이 가득 둘러쳐져 있습니다.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숙소는 마치 포로수용소 같은 곳입니다"라는 처참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9.
상반된 대응: 일본 정부의 회피와 시민들의 양심적 노력
일본 정부의 회피와 부인
사고 발생 당시 일본 언론은 사고 소식을 축소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습니다. 아사히신문 야마구치판은 "배수 작업 등 응급조치를 강구하고 있고 입갱자 대부분을 구출했으나 여전히 잔류 약간 명의 생사는 불명"이라는 거짓 정보를 전했습니다^3.
8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는 유골 발굴과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3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후쿠오카 다카마로 후생노동상은 유골 발굴 요구에 대해 "해저 탄광에 매몰된 것으로 보이는 유골의 매몰 위치와 진로 등이 분명치 않다"며 "현실적으로 대응 가능한 범위를 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즉답을 피했습니다^5.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유골 반환 요청에도 일본 정부는 20년 넘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7.
양심적 일본 시민들의 노력
일본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달리,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은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1991년 뜻있는 시민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세이 탄광 물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 발족했습니다^3. 이 모임은 희생자 관련 증언과 자료를 수집하고, 한국의 유족들과 교류하며, 매년 추도식을 개최해왔습니다^3.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협조를 거부하자 시민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습니다. 1600만엔의 성금을 모아 2013년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고 강제동원된 조선인 희생자 136명의 한국 이름을 새겼습니다^1. 또한 한국과 일본에서 1200만엔(약 1억1000만원)의 성금을 모아 2024년 9월부터 유골 발굴 조사를 시작했고, 9월 25일에는 82년 만에 갱도 입구를 발견했습니다^1^6.
이노우에 요코 공동대표는 "일본 사람들은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그런 사실(강제노역) 자체를 몰랐죠.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 (유골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1.
진정한 화해를 위한 과거사 청산의 필요성
조세이 탄광 사건은 일본 내부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상반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사과와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양심적인 시민들은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노우에 대표는 "(일본 정부나 우익 인사들은) '일본의 국익이 우선'이라고 얘기하곤 한다"며 "진짜 국익은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밝혀 반성하는 국가'의 품위를 갖추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한일 간 '미래지향'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지워진 역사를 다시 새겨넣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1.
한국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신국균 평화디딤돌 운영위원은 "단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진위를 밝히자는 것인데, 우리 정부가 움직임을 주저하고 있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습니다^4.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이들 삶의 마지막을 조사하고 수습하는 것은 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최소한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습니다^4.
과거를 직시해야 미래가 열린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사 청산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이노우에 대표는 "일본의 전쟁으로 희생된 유해는 이곳 우베시 앞바다에 83년 동안 방치된 채로 있다"라며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 내 방치돼 있는 유골을 그대로 둔 채 '미래 지향'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고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습니다^4.
이 사건은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진정한 화해의 시작임을 보여줍니다.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양심적 노력들은 정부 간 공식적인 화해와 협력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이 보여준 행동은 국가 간 갈등을 넘어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진정한 화해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조세이 탄광의 비극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어두운 과거일수록 더욱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럴 때만이 진정한 미래를 향한 길이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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