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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성장

이길여 총장, 10대 소녀에서 국내 대표 교육자로! 동창회가 증명하는 전설적 인생 스토리

by Agent 2025. 5. 14.

여러분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단순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나요, 아니면 평생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나요? 오늘 소개해드릴 이길여 총장의 이야기는 동창회가 단순한 모임을 넘어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의료계와 교육계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 인물로 성장했을까요?

이길여 총장, 10대 소녀에서 국내 대표 교육자로! 동창회가 증명하는 전설적 인생 스토리
이길여 총장, 10대 소녀에서 국내 대표 교육자로! 동창회가 증명하는 전설적 인생 스토리

이길여 총장의 불꽃 같은 성장 스토리

학창 시절과 의사의 꿈

이길여 총장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중학교 6학년(현 고3) 때 6·25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고, 주변에서는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4. 이런 참혹한 현실을 목격하며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특히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남자 친구들을 생각하며 "이 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그녀의 가슴에 새겨졌습니다^4.

의사로서의 첫 발걸음

195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길여 총장은 1958년 인천에서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하며 의사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4.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입원 보증금 없는 병원'을 운영하며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실천했습니다. 그녀는 환자를 품에 안으며 치료해주는 따뜻한 의사로 알려졌고, "돈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새 생명 찾아주기 운동 본부'라는 사회복지법인까지 설립했습니다^4.

동창회를 통해 빛나는 이길여 총장의 인연

모교와의 끊임없는 인연

이길여 총장은 여러 학교와 동창회 활동을 통해 인연의 끈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총동창회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을 이끌고 있으며^1, 1995년부터 2005년까지는 서울의대 동창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4. 그녀의 모교에 대한 사랑은 어느 동문보다도 각별합니다.

유명한 '이길여 동창회 사진'

2012년 이길여 총장의 또 다른 모교인 대야초등학교에서는 특별한 동창회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찍힌 사진은 이른바 '이길여 동창회 사진'으로 유명해졌는데, 비슷한 연배의 동문들과 함께 찍은 이 사진은 그녀의 변함없는 '동안' 외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3. 이 사진은 그녀의 젊음의 비결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동창회의 정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리여고 동문으로서의 정체성

이길여 총장은 이리여자고등학교(현 익산 이리여고)의 자랑스러운 동문이기도 합니다. KBS '김동건의 한국한국인'과 MBC '성공시대'에 출연한 그녀의 이야기는 후배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 학교 동창회 게시판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5. 학창 시절 배움의 터전이었던 모교에 대한 애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료와 교육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 여성 리더

가천길재단의 설립과 성장

이길여 총장은 일본의 의료 시스템을 경험한 후 1975년경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진국이란 무엇인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지금의 '가천길재단'으로 이어졌습니다^4. 길병원을 설립한 데 이어 1994년 경기 간호학교였던 경기전문대학을 인수하고, 1998년에는 경원대를 인수했습니다. 2012년에는 가천의대와 경원대를 통합해 학생 수 기준 수도권 3위 규모의 가천대학교를 출범시켰습니다^4.

수많은 영예와 수상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은 다양한 상과 훈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 인촌상(공공부문) 등 국내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했으며, 국제라이온스 인도주의상까지 받았습니다^4. 최근에는 한국경영학회가 제정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는데, 비영리 공익재단 설립자로서는 최초의 기록입니다^1.

멈추지 않는 바람개비, 이길여 총장의 인생 철학

박애·봉사·애국의 가치

이길여 총장은 자신의 삶의 키워드로 '박애·봉사·애국' 세 가지를 꼽습니다^4. 이는 가천길재단의 철학이자 이념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의사는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환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살아왔으며, "부자 나라,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나라를 후세에게 남겨줘야 한다"는 일념을 품고 있습니다^4.

'가천(嘉泉)'의 의미

가천길재단과 가천대학교의 이름인 '가천(嘉泉)'에는 그녀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가회합례 수세인천(嘉會合禮 壽世仁泉)'의 첫 글자 '嘉'와 끝 글자 '泉'을 조합한 것으로, "기쁨이 모여 예(바른 삶)를 이루게 하고, 장수(건강)의 세상이 맑은 샘 같은 세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4. '가회합례'는 '교육'을, '수세인천'은 '의술'을 상징하며, 의료와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친 그녀의 삶을 대변합니다.

이길여 총장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열정과 도전정신

이길여 총장이 젊은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는 바로 '열정과 도전정신'입니다. "삶의 의미는 도전하고 개척하고 이뤄내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생각의 크기, 상상력과 비전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하며,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는 말로 제자들을 격려합니다^4.

스스로를 '멈추지 않는 바람개비'라 칭한 이유

그녀는 자신을 '멈추지 않는 바람개비'라고 표현합니다. 어린 시절 수수깡으로 바람개비를 만들어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바람이 없으면 산으로 있는 힘껏 뛰어 올라가면 돌고" 그러면서 "역경이라는 바람을 뚫고" 살아왔다고 합니다^4. 이런 철학이 가천대 캠퍼스에 '바람개비 동산'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구현되었습니다.

공익을 위한 헌신, 개인이 아닌 재단으로

공익법인으로의 운영 방식

이길여 총장은 "정치권의 유혹도 있었지만 물리쳤고, 돈에 대한 유혹도 컸지만 모든 것을 개인 소유가 아닌 공익재단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4. 그녀의 학교와 병원은 모두 공익법인으로 되어 있어 사기업처럼 재산을 승계하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는 그녀의 철학을 공유하는 리더들이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하늘이 준 소명을 따라

"하늘이 저에게 준 소명은 '많은 이들에게 넉넉히 나눠주고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길여 총장^4. 그녀는 현재 준비 중인 회고록의 부제도 '환자와 제자에 몰입해온 여의사의 기록'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의술과 교육만의 한 길을 걸어온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지금도 현역 대학 총장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길여 총장. 그녀의 인생은 어려운 시절에 품은 꿈과 사명감으로 시작해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익재단의 설립으로 이어진 자랑스러운 여정입니다. 동창회와의 인연을 통해 더욱 빛나는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함께'의 가치와 '나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이길여 총장은 자신의 모든 성취를 개인의 영광이 아닌 사회와 국가에 환원하고, 후학 양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녀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성공 후에는 다시 사회에 기여하는 선순환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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