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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구르카: 세계 최고의 전사인가, 용병인가? 그들의 200년 전설에 담긴 진실

by Agent 2025. 4. 12.

여러분은 키가 겨우 160cm 남짓한 네팔 출신 병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전투원으로 꼽힌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차라리 죽음을 택하느니 비겁해지지 않겠다"는 모토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구르카(Gurkha)'입니다. 오늘은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장을 지배해온 이 전설적인 전사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구르카(Gurkha)
구르카(Gurkha)

구르카, 그들은 누구인가?

구르카는 네팔과 북인도 일부 지역 출신의 병사들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네팔의 고르카(Gorkha) 지역에서 유래했으며, 자신들을 '고르칼리(Gorkhali)'라고 부릅니다^7. 현재 구르카 부대는 네팔군(약 96,000명), 인도군(약 42,000명), 영국군(약 4,010명)에서 복무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와 브루나이의 경찰 및 보안 부대에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7.

구르카의 특징과 명성

구르카 병사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 평균 신장은 약 160cm(5피트 3인치)로 크지 않지만 놀라운 체력과 인내력 보유^10
  • 쿠쿠리(Kukri)라 불리는 앞으로 휘어진 18인치(약 45cm) 길이의 칼을 상징적으로 사용^7
  • 극도의 충성심과 용맹함으로 유명^3
  • 인도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샘 마넥쇼 원수는 "만약 누군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거나 구르카일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
 

Gurkha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Indian and Nepalese national soldiers Nepali soldiers; drawing by Gustave Le Bon, 1885 Monument to the Gurkha Soldier in Horse Guards Avenue, outside the Ministry of Defence, City of Westminster, London A khukuri, the

en.wikipedia.org

The Gurkhas leave no man behind. When a squad of troops was ambushed out in the open in Afghanistan in 2008, one soldier, Yubraj Rai, was hit and fatally wounded. But Captain Gajendera Angdembe and Riflemen Dhan Gurung and Manju Gurung carried Rai across 325 feet of open ground under heavy fire. At one point, one of the soldiers resorted to using both his own rifle and Rai’s rifle at the same time to return fire on the enemy.
The Gurkhas leave no man behind. When a squad of troops was ambushed out in the open in Afghanistan in 2008, one soldier, Yubraj Rai, was hit and fatally wounded. But  Captain Gajendera Angdembe and Riflemen Dhan Gurung and Manju Gurung  carried Rai across 325 feet of open ground under heavy fire. At one point, one of the soldiers resorted to using both his own rifle and Rai’s  rifle  at the same time to return fire on the enemy.

구르카의 역사: 적에서 동맹으로

구르카의 영국군 복무 역사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영국의 적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앵글로-네팔 전쟁과 동맹의 시작

1814년에서 1816년 사이, 영국 동인도 회사와 네팔의 구르카 왕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8. 이 전쟁은 영국이 승리했지만, 구르카 전사들의 놀라운 전투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3. 이 전쟁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양측이 비전투원을 존중하고 약탈을 통제하는 등 명예롭게 진행되었습니다^8.

전쟁이 끝나고 1816년 세갈리 조약이 체결되면서, 양측은 서로가 적보다는 친구로 지내는 것이 낫다고 결정했고, 이때부터 구르카 연대가 동인도 회사 군대의 일부로 모집되기 시작했습니다^8.

인도 반란과 충성의 증명

1857년 인도 반란(세포이 항쟁) 당시, 벵갈 군대의 일부가 영국에 반기를 들었으나 모든 구르카 부대는 확고하게 영국에 충성을 다했습니다^8. 이 기간 동안 나시리, 시르무르, 쿠마온 대대(후에 1, 2, 3 구르카 라이플스로 개명)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네팔 군대의 9,000명 병사들도 영국을 지원했습니다^8.

용병인가, 정규군인가? 오해를 풀다

구르카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그들이 '용병'이라는 인식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구르카는 용병이 아닌 이유

  1. 1947년 영국, 인도, 네팔 정부 간 체결된 '삼자협정(Tripartite Agreement)'에 따르면, 구르카는 정규군에 완전히 통합되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용병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5.
  2. 1972년에 제정된 제네바협약 47a조와 48b조는 구르카와 프랑스 외인부대가 용병으로 불리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습니다^5.
  3. 용병과 달리, 구르카는 항상 국가의 정규군에서 복무해왔으며 현재도 그러합니다^5.
  4. 구르카와 그 가족들은 영국 시민권을 취득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다른 시민들처럼 국가에 봉사하고 있습니다^5.

구르카를 용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네팔 정부가 불쾌하게 여기는 용어이며, 삼자협정에 따라 사용하지 않도록 약속된 표현입니다^11.

전설이 된 전투 이야기

구르카의 명성은 수많은 전투에서의 놀라운 용맹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의 용기는 다양한 일화로 전해집니다.

몬테 카시노 전투의 영웅들

제2차 세계대전 중 몬테 카시노 전투에서 구르카 부대는 교수대 언덕(Hangman's Hill)을 점령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3. 이전 2개월 동안 어떤 부대도 잘 방비된 독일군 진지를 뚫지 못했지만, 구르카는 이 언덕을 성공적으로 점령했습니다^3.

독일군의 반격으로 200명의 구르카 병사들은 고립되었지만, 그들은 9일 동안 독일 척탄병의 끊임없는 공격을 견디며 언덕을 지켰습니다^3. 단 2일치의 보급품만 가지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물 대신 눈을 녹여 마시면서도 그들은 마지막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용감하게 싸웠습니다^3.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 영웅들

구르카는 영국군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Victoria Cross)을 26개나 받았습니다^10. 그 중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구르카 병사는 탄약이 떨어지자 기관총의 삼각대를 무기로 사용하여 탈레반 전사들을 물리쳤습니다^4.

부츠 끈을 묶는 전설

구르카의 스텔스 능력에 관한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그들은 영국과 미국 보초병들에게 몰래 접근해 그들의 부츠 끈을 함께 묶어놓곤 했습니다^3.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진영에 몰래 침투하여 텐트에 있는 사람들 중 교대로 한 명씩 살해하여, 살아남은 자들이 그 이야기를 전파하도록 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3.

구르카가 되는 길: 극한의 선발 과정

구르카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국군 구르카 부대에 지원하는 네팔 청년들은 극도로 경쟁이 치열한 선발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혹독한 선발 테스트

  • 매년 약 20,000명의 네팔 청년들이 지원하지만 단 204명만이 선발됩니다^6
  • 25kg의 무게를 등에 지고 5km의 언덕을 46분 내에 달려야 합니다^6
  • 탈락한 지원자들 중 일부는 실패의 수치를 견디지 못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사라지거나 심지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4

이러한 극한의 선발 과정은 구르카의 전설적인 명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쿠쿠리: 구르카의 상징적 무기

구르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들의 상징적인 무기인 쿠쿠리(Kukri 또는 Khukuri)입니다.

쿠쿠리는 앞으로 휘어진 약 45cm(18인치) 길이의 칼로, 네팔 전사들이 수세기 동안 사용해온 전통 무기에 기반합니다^10. 현대 구르카 부대에서는 이 칼을 사용한 전투 훈련을 받습니다^10.

이 무기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도 있는데, 쿠쿠리는 피를 묻히지 않고는 칼집에 다시 넣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4. 이는 실제 규칙이라기보다는 구르카의 용맹함을 상징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르카의 현대적 역할과 도전

오늘날 약 4,090명의 구르카가 영국군에서 복무하고 있으며^9, 그들은 영국 및 해외에서 다른 부대와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11.

동등한 권리를 위한 투쟁

그러나 구르카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랫동안 영국 병사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 오랫동안 구르카는 영국 병사들보다 훨씬 적은 급여를 받았습니다^1
  • 수년간의 법적 투쟁 끝에 영국군은 마침내 구르카의 급여를 인상했지만, 여전히 영국 병사들과 완전히 동등하지는 않습니다^1
  • 영국 거주권 문제도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으며, 영국 배우 조안나 럼리(Joanna Lumley)는 구르카 병사들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옹호해왔습니다^3

이것만 기억하세요: 구르카의 유산

구르카는 단순한 군인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들은 극한의 충성심, 용기, 그리고 인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국을 위해 싸워온 구르카는 총 200,000명 이상이 참전했으며, 46,000명 이상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10.

그들은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용병이 아닌 정규군의 일원이며, 그들의 명성은 수많은 전투에서 보여준 뛰어난 전투 능력과 충성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영국군 내에서 그들은 여전히 가장 존경받는 부대 중 하나로 남아있으며, 그들의 모토인 "차라리 죽음을 택하느니 비겁해지지 않겠다"는 말은 오늘날까지 그들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구르카의 이야기는 용기, 충성심, 그리고 인내가 신체적 크기나 국적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오늘날까지 전 세계 군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전사로 인정받는 그들의 유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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